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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1/09/10 13:14

 안철수 원장은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이란다. 늘 웃는 낯에, 최근 출연한 방송에서 화를 내 본 적이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혼자 고함을 질러 본 일은 있다’고 대답하고, 군복무 시절 후임병에게 반말을 하지 못해 어정쩡한 존대를 섞어 썼다고 털어놓는 그는 성질 급한 현대인들 속에서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다.

 
그런 그가 폭탄선언으로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설! 이놈이 싫어 저놈 찍어주고 다시 저놈에 질려 이놈으로 돌아가기에 지친 유권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놈’과 ‘저놈’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부채’를 언급하면서, ‘본디 행정직이어야 하는 시장이 좌우 싸움에 물들어 정치색을 띠는 것을 더 두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출마를 확정지은 것도 아니고 단지 그런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했을 뿐인데도 유권자들은 달아올랐고, 만 하루 만에 이어진 여론조사에서 그는 이제껏 ‘밑밥’을 깔아온 모든 후보를 압도했다. 어떤 당도 등에 업지 않은 한 개인의 등장에 정치권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여당의 기수였던 만큼, 한나라당은 안철수가 ‘내 편’은 아니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감지하고 ‘송충이는 솔잎’, ‘순간의 인기보다는 경륜’등을 내세우며 그를 깎아내리는 한편 ‘오히려 야권의 표가 분산되면 우리에겐 호재’라는 배짱 아닌 배짱을 부렸다.

 
반면 민주당은 이 정권 내내 그들의 정치적 모토이자 지지 호소의 근간이었던 ‘MB정권 심판’이라는 구호가 힘을 잃었고, 오히려 그것에 발목을 잡힌 꼴이 되었다. 더 이상 여당에 대한 심판으로서 자신들에게 표를 던져 달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권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나서는 것이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던 야권 인사들 앞에, 한나라도 아니지만 민주도 아니며 아직 깨끗한 ‘대안’이 보란 듯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는 헐뜯기 바쁘고 하나는 눈치보느라 목이 돌아가는 틈에, 안철수는 자기 지지율의 1/10 정도만 가진 박원순 변호사에게 ‘단지 몇 마디를 물어보고는’ 깨끗이 출마를 양보해버렸다. 한국 선거판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지지율은 다시 한번 요동쳤다. 한나라당은 ‘이럴 줄 알았다, 비열한 야합’이라며 다시 삿대질을 해댔고 민주당은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초기 논의에 들어갔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안철수 원장의 출마설이 불거졌을 때 가장 주목받아야 할 것은 ‘어느 쪽에서?’가 아니라 ‘왜?’였다. 여당과 야당의 소위 ‘엘리트’정치인들이 ‘선동당한 대중’, 혹은 ‘계몽되어야 할 우민’으로 취급했던 일반인들은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작 정치인들은 안철수의 색깔이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분배는 종북의 논리’, ‘부자들은 서민 앞에서 무조건 죄인’(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쪽의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가 부자 혹은 중산층이다.)식으로 서로 무식하게 편을 갈라 국회에서 혹은 시의회에서 국민 세금 받아가며 의미 없는 싸움만을 하고 있던 바보들에게 안철수 원장은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으며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들이 이 의미 없는 색깔 싸움에 얼마나 지쳐있는지, 까놓고 보면 다 똑같이 썩어 있으면서 내가 더 불리하면 입 다물고 유리하면 터뜨리는 이 추잡한 판이 얼마나 근본 없는 곳인지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얼굴 붉히고 욕지거리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은 못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바보같은 세상에 화를 냈다.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오히려 그 사실을 알고, 때문에 열광한다. 그러나 남들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진짜 바보들은 그가 왜 화를 냈는지 알지 못하고 그를 자신들의 한계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한쪽은 스스로보다 나은 사람이 나왔을 때 선뜻 내주지 못한 권력에 대한 욕심을 손에 쥐고서 여전히 ‘국민의 선택’,‘민주화’ 운운하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그가 왜 나왔는지 그 근본적 이유를 알려 하지도 않은 채 ‘너도 역시 빨갱이’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그놈의 포퓰리즘 소리 듣기도 아주 지긋지긋하다. 단지 포퓰리즘(populism)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왜 현재 그것이 그리도 인기 있는지(popular)를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현대 한국의 거대 정당들에는 큰 혁신이 필요하다. 정치는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고? 모든 것의 기본은 교과서가 아닌가! 물론 정치 실상의 모든 것이 교과서처럼 정석으로 돌아가리라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교과서로 대표되는 기본과 철칙을 지나치게 무시한다. 그러니 정당에 철학이 없다. 그때그때 무사히 넘기면 된다는 식이다. 좀 촌스러우면 어떤가? 좀 쑥쓰러우면 어떠냔 말이다. 도덕책처럼 행동하는 것이 쑥스럽고 촌티난다는 생각이 현대의 부패한 한국을 만든 큰 원인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응용의 근본은 공식이다. 공식도 모른 채 응용을, 그것도 편법만을 앞세워 가려던 것이 현재의 무식한 정치인들을 낳았다. 한 똑똑한 사람이 그들에게 부드러운 경고를 했으나 그들은 아직 듣지 않는다. 놀라긴 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그 바보들에게 철퇴는 언제라도 다시 날아들 수 있다. 안철수는 물러났으나 다음엔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에서 대권에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안철수 원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뇨, 전혀요. 서울시장 출마건만으로도 너무 고심을 많이 해서, 그리고 이것도 너무 우연히 촉발된 거라서...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겐 맞대놓고 오는 손가락질과 욕설보다 더 식은땀이 흐르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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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인형